獨村公(독촌공) 諱(휘) 宗榮(종영;21代)께서 現夢으로 얻은 紫陽山아래 雲谷의 가운데는 우리 節度公派(절도공파),僉正公派(첨정공파) 의 本據地이다. 處士公(처사공) 휘 時牧(시목;19)先祖부터 愼軒公(신헌공) 휘 鎭洪(진홍;23代)先祖 28代 鏞字 先祖까지 여러 代의 墓所가 山의 左右에 줄을 이루고 있다. 27代 映字 奎字(嗣孫),彰字 奎字先祖 兄弟分께서 先親(雲塢公;운오공)의 遺意를 받들어 宗族과 힘을 합하여 1902년 자양산 앞 등성이의 陽地바른곳에 齋室을 세워 향기로운 祭需(제수)를 올리고 齋戒할 곳을 만드셨다. 겸하여 後孫들에게 漁溪(中始祖),節度公(壽千;14代),僉正公(詠道;17代),處士公 (時牧;19代),愼獨軒(鎭洪;23代),雲塢公(性璹;26代)의 孝悌忠義 정신을 繼承하고 학문을 수련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扁額(편액=懸板)을 念脩薺라 하셨으니 이는 詩經 文王篇 "너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덕을 닦을 지어다" 를 취하여 先祖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손을 넉넉하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염수재에서 자손들이 모여 과세도하고 윷놀이 정경도 놀이로 환성이 진동하여 재실이 떠나갈 정도로 즐기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戊申 世譜와 乙未 派譜가 이 곳에서 편찬되었다.

현재는 19代 時字 牧字 할아버지 이후 24代 泰字(태자) 永字(영자) 할아버지까지 위선사(별첨;시제 모시는 조상)와 소관 재산의 유지 보전을 목적으로 鎭字 洪字,鎭字 宅字,鎭字 璜字 할아버지 자손들로 종중회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재실 준공 시 기념 식수한 은행나무는 일백 여 년 지난 지금 무성하여 先祖의 幽宅과 우리 後孫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재실에 부착된 각종 현판은 점차 색이 바래고 글자가 희미해져 차재에 번역과 함께 기록을 보전코자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사진 밑에 번역을 클릭 하시면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제 모시는 선조 *** (2001년 현재)

銜字

備考

19

時牧

昌寧 成氏,後配 碧珍 李氏

中始祖부터 8代

20

仁同 張氏


21

宗榮

南平 曺氏

宗榮祖는 林坡會에서祭需 準備

22

基元

星州 呂氏


23

鎭洪

廣州 金氏


24

泰永

晋陽 鄭氏,後配 密城 孫氏,三配 載寧 李氏


염수재 전경
준공시 심은 은행나무
 
염수재 현판
자운정사현판
   
염수재 상량문(영규)
염수재 원운(영규)
염수재 상량문(영규) 염수재 원운(영규)
염수재기(창규)
건립기(창규)
염수재기(창규) 건립기(창규)
축시(환규)
염수재기(정면규)
축시(환규) 염수재기(정면규)



기둥 및 벽걸이 현판
1곡-1
1곡-2
2곡-1
2곡-2
1곡-1 1곡-2 2곡-1 2곡-2
3곡-1
3곡-2
4곡-1
4곡-2
3곡-1 3곡-2 4곡-1 4곡-2
5곡-1
5곡-2
3곡-1 3곡-2



무이도가 원문 무이도가원문



번역자 양력
譯者 略歷
姓銜 ; 成 百
忠南 禮山 出生
家庭에서 父親 月山公으로부터 漢文修學
月谷 黃璟淵 瑞巖 金熙鎭先生 師事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修了
高麗大學校 敎育大學院 漢文敎育科 修了
民族文化推進會 國譯硏修院 敎授
  成均館 翰林院 講師
慶熙大學校 大學院 講師
傳統文化硏究會 理事
古典國譯賞 受賞
論文 및 譯書
  艮齊의 性理學小考
燕岩의 學問思想硏究
宣祖實錄 宋子大全 高峯集 茶山集 退溪集 獨谷集
百戰奇法 武臣須知 四書集註 詩經集傳 外 數十種 國譯



念脩齋 重建記 (염수재 중건기)

念脩齋는 林坡 映奎公이 高宗 三十九年(西紀 一千九百二年) 壬寅 十二月에 創建하셨다. 念脩齋는 嗣孫 林坡公의 八代祖와 七代祖와 高祖父의 齋閣이다. 이후 歲月의 經過에 老朽하여 十一世孫 弼濟가 여러종원들의 뜻과 성원을 모아 丁酉 二千十七年 六月에 重建하고 삼가 그 所懷를 記錄한다.

念脩齋는 "先祖를 생각하고 그 德을 닦으라."는 詩經의 念脩요, 그 齋閣의 이름이다. 곧 孝는 先祖의 祭享과 省墓 등 외형적 恭敬地에서 비롯하여 그 忠孝와 勤儉奉仕 등 厚德한 遺志를 살펴 後孫으로써 繼承發揮해 나아가는 길이 本孝임을 强調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 念脩齋의 참된 孝行은 相生에 있다. 곧 子孝父慈相이다. 子息은 父母에게 孝道하고 어버이는 子息을 아껴주는 모양새가 그 本質이다. 子女의 孝道로 어버이가 매양 즐겁고 康健하게 살아가시고, 어버이 또한 그 子息 돌봄의 지극정성에 子女들이 날로 알뜰한 家庭과 健全한 社會人으로 成長해 나아가게 된다면 이는 더할 나위없이 平安하고 부러운 世上일 터이다. 나아가, 날로 多福한 歡喜의 家庭이 늘어나고, 健實한 社會가 形成되고, 믿음직하고 굳건한 國家發展이 이루어진다는 뜻이거니와, 이보다 더한 念脩齋의 當理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부디, 참되고 올바른 念脩齋의 뜻과 意義가 우리 後孫들로부터 復元 發揮되고, 길이 昌盛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丁 酉 年  六 月
後 孫    弼 濟  謹 題



念脩齋 重建 小考 (염수재 중건 소고)

백십 여 년 동안 近現代史의 온갖 桎梏 속에서도 굳건히 節度公, 僉正公 선조의 얼과 정신을 지켜온 念脩齋가 老朽하여 허물어지는 모습에 기회 있을 때마다 憂慮와 慨歎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劣惡한 念脩齋의 財政 형편에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2016년 7월 어느 더운 날 뜻있는 몇몇 宗員들이 모여 念脩齋 重修의 절실함을 認知하고 衆智를 모으니 이가 念脩齋 重建의 시작이다.

이에 重建委員會를 구성하고 (총괄책임자 병래, 진행 영래, 회계 익래, 건축 학래, 고문 현우, 각래, 석제, 일제, 철제, 현국) 資金 募金에 착수함에 필제 族叔께서 쾌히 喜捨를 약속해주신 巨金(일억오천만원)의 獻金에 鼓舞되어 많은 宗員들(46명)의 自發的 參與를 基盤으로 총 이억칠천사백여만원에 달하는 建立基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개인별 寄附 金額의 過多를 且置하고 念脩齋 宗員들의 崇祖尙門의 정신이 새로이 發揮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資金募金과 運用, 設計와 治木, 治土의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重建에 拍車를 가하기까지 수차례의 위원회, 고문단 회의를 거쳐 2017년 2월 10일 着工에 돌입하여 3월 2일 定礎, 3월 7일 上梁式을 거쳐 4개월여 만인 2017년 6월 18일 드디어 大宗會의 많은 어른들과 遠近 賀客들을 모시고 告由祭, 竣工式을 가지니 先祖에 대한 憼慕의 情은 새로운 보람과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念脩齋 重建에 도움을 주신 많은 宗員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무궁한 발전을 祈願하는 바이다.


2017年  7月
後 孫    珏 來  謹 題




念脩齋 重建記 (필제)


重建 念脩齋 (遠景)


重建 念脩齋 (近景)


念脩齋 建立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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