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재

염수재 상량문(영규)

經始重役 큰 역사(役事)를 시작하니
方仰甄君思亭之名 진군(甄君)의 사정(思亭)1)의 이름을 우러러 생각하고
感慕先徽 선대(先代)의 아름다운 자취를 감모(感慕)하니
每推宋儒祭墓之義 언제나 송유(宋儒)들이 묘소에 제사한 의리2)를 유추하네.
肯堂肯構3) 선대가 마련한 터전에 집을 지어
不愆不忘4) 잘못하지 않고 잊지 않노라.
恭惟我八代七代兩祖考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8대와 7대의 두 조고는
漁爺後仍 어야(漁爺)의 후손(後孫)이요

1) 진군(甄君)의 사정(思亭) : 사정은 송(宋)나라 때 진씨(甄氏) 집안의 재실(齋室) 이름인데, 당시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사정기(思亭記)'를 지어 조상을 사모하는 뜻을 나타냈으므로 말한 것이다.
2) 송유(宋儒) : 송(宋)나라 때의 학자로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를 가리킨다.
3) 긍구긍당(肯構肯堂) : 《서경(書經)》 대고(大誥)의 내용으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터를 닦아놓으면 그 터에 집을 짓는 것인데, 부조(父祖)의 가업(家業)을 잘 계승하는 훌륭한 자손이 있어 가문을 빛냄을 이른다.
4) 不愆不忘 :《시경(詩經)》 대아(大雅) 가락편(假樂篇)의 내용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모두 옛법을 따름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節度嫡脈 절도공(節度公)의 적맥(嫡脈)이네.
山林樂地 산림의 좋은 지역은
克遵紫陽之謨 자양(紫陽)5)의 가르침을 따르고
富貴在天 부귀는 천명(天命)에 달려 있으니6)
早□靑雲之志 일찍 청운(靑雲)의 뜻7)을 포기하였다오.
亦　我高祖愼獨軒 또한 우리 고조(高祖)이신 신독헌(愼獨軒)은
稟得儒雅 유자(儒者)의 고상한 자품(資稟)을 타고나시어
紹述家聲 가문(家門)의 명성(名聲)을 이으셨네.
孝親睦族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종족들과 화목하니
道自盡於分職 도리는 스스로 직분을 다하였고
省　格廟 성묘(省墓)하고 사당(祠堂)에 이르니
誠可交於神明 정성은 신명(神明)과 사귀었네.
小塘觀魚 작은 못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며
體驗活潑之理 활발(活潑)한 이치를 체험하고
老圃栽菊 채전(菜田)에 국화를 심어
心存隱逸之標 마음에 은일(隱逸)의 의표(儀表)를 보전하셨네.8)

5) 자양(紫陽) : 송(宋)나라 주자(朱子)의 별호이다.
6) 부귀는 … 있으니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사생은 명(命)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死生有命富貴在天〕" 라고 보인다.
7) 청운(靑雲)의 뜻 : 청운은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오름을 가리킨다.
8) 채전(菜田)에 … 보전하셨네 : 진(晉)나라 때 처사인 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에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면서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하였으므로 곧 도연명을 가리킨 것이다. 도연명은 일찍이 기우는 국운(國運)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이것이 여의치 못하므로 풍상(風霜)을 견디는 국화를 사랑하며 새 왕조인 송(宋)나라에 벼슬하지 아니하여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

瞻彼杉松 저 삼나무와 소나무를 바라보니
有儼堂斧 엄숙히 묘소(墓所)가 계신데
堪輿卜吉 풍수(風水)가 좋은 명당(明堂)을 점치니
龍盤虎　 청룡(靑龍)이 서려있고 백호(白虎)가 꿇어 앉은 듯
山高水長 산이 높고 물이 길게 흐르니
幽宅敍倫 유택(幽宅)이 차례로 있네.
父葬子繼 아버지를 장례한 곳에 아들이 뒤를 잇고
祖　孫　 할아버지 무덤에 손자를 부장(　葬)하였네.
　風　雨 비바람 소리에
如見陟降之靈 오르내리시는 영혼을 뵙는 듯하고
濡露肅霜 봄의 우로(雨露)와 가을의 서리엔
孰無　　之意 어찌 감동하고 서글퍼하는 마음이 없겠는가.9)
僉謀闔族 여러 종족(宗族)들과 상의하여
始建齋宮 비로소 재실(齋室)을 세웠네.

9) 봄의 … 없겠는가 : 봄에 이슬이 내려 초목의 잎이 피거나 가을에 서리가 내려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이것을 보고 돌아가신 부모나 선조를 서글피 사모함을 이른다. 《예기(禮記)》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가 내리거든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어서 장차 부모를 잃을 듯이 여기니, 이는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봄에 이슬이 이미 적셔주거든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놀라는 마음이 있어서 장차 부모를 뵈올 듯이 여기니, 이는 날씨가 따뜻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鑿斯築斯 이곳을 파고 이곳에 집을 지으니
旣得神●鬼秘之址 신명(神明)이 숨겨두고 귀신이 감춰놓은 좋은 터를 얻었고
●;아낄 간
斧彼鉅彼 저곳에 도끼질하고 저곳에 톱질하니
允協月德日良之時 달이 좋고 날짜가 좋은 때에 맞았네.
隆棟題　之形 높은 들보와 긴 서까래의 모습은
便是　飛鳥革 바로 꿩이 나는 듯 새가 솟아 오르는 듯하고 10)
凉堂　室之制 시원한 대청과 따뜻한 방의 제도는
莫非規圓矩方 모두 규구(規矩)11) 에 맞아 둥글고 네모지네.
　豆之所苟完 변두(　豆)12) 를 올릴 곳이 완전하고
衣履之藏密邇 옷과 신을 묻은 묘소가 가깝네.
虹樑載擧 무지개 들보를 들어 올리니
　唱是騰 목수들의 창가(唱歌) 드높구나.
抛樑東 들보를 동쪽에 얹으니

10) 꿩이 … 듯하고 : 집의 동우(棟宇)가 높게 일어남은 새가 놀라 낯빛을 변함과 같고 처마가 화려하고 높으며 날아갈 듯함은 꿩이 날아 날개를 펴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으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을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으니 근자가 올라가서 정사를 다스릴 곳이로다.〔如鳥斯革如　斯飛君子攸　〕" 하였다.
11) 규구(規矩) : 규(規)는 옛날 원형을 재는 기구이고 구(矩)는 곡척(曲尺)인데 이들 기구는 목수가 재목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하여 법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2) 변두(　豆) : 제기(祭器)를 가리키는 바, 변(　)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이고 두(豆)는 나무로 만든 제기이다.

鞍岑迎日到　中 안잠(鞍岑)이 해를 맞이하여 우중(　中)13)에 이르렀네.
欲觀斯道光明像 이 도(道)의 광명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惟在　　學問功 오직 학문을 부지런히 힘씀에 달려 있네.
抛樑南 들보를 남쪽에 얹으니
紫陽端肅滴蒼嵐 자양(紫陽)이 단정한데 푸른 아지랑이 물방울지네.
莫言此處無奇絶 이곳에 기이함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雲谷居人說晦菴 운곡(雲谷)에 사는 사람들 회암(晦菴)을 말하네. 14)
抛樑西 들보를 서쪽에 얹으니
五福峯高天與齊 오복봉(五福峯) 높아 하늘과 똑같네.
壽富康寧家有慶 수부강녕(壽富康寧)을 누려 집집마다 경사가 있으니
鵠鸞□竹　盈　 봉황새들 대나무에 깃들어 눈에 가득히 볼 수 있네.
抛樑北 들보를 북쪽에 얹으니
星斗超超拱帝極 북두성(北斗星) 드높이 북극성(北極星)을 향하네.

13) 우중(　中) : 해가 정오(正午)에 가까움을 이른다.
14) 운곡(雲谷)에 … 말하네 : 운곡은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 서쪽에 있는 골짝의 이름인데, 주자(朱子)가 이곳에 운곡초당(雲谷草堂)을 짓고 운곡노인(雲谷老人)이라 호하였다. 회암(晦菴) 역시 주자의 별호인데 마침 이곳에 자양산(紫陽山)과 운곡이 있어 주자가 강학하던 곳과 지명이 같으므로 말한 것이다.

每依杓建望京華 언제나 북두성 자루 따라 서울을 바라보니
南國詞臣符聖德 남국(南國)의 문신(文臣) 성덕(聖德)에 부합하네.
抛樑上 들보를 위에 얹으니
先楸秀色入思想 선영(先塋)의 빼어난 산빛 머리속에 들어오네.
仁覆皇天雨露甘 인자하신 하늘 단 우로(雨露)를 내려
永令百世孫枝養 영원히 백세토록 손자들 길러주네.
抛樑下 들보를 아래에 얹으니
願德川流流不舍 덕(德)이 냇물처럼 흘러 그치지 않으리.
祖先遺澤長世斯 선조(先祖)의 유택(遺澤) 영원히 전하여
期待吾門善繼者 우리 가문(家門) 잘 계승하기를 기대하노라.
伏願上樑之後 엎드려 원하오니 들보를 올린 뒤에
導率工役 공역(工役)을 인도하고
耳雲　誠 후손들 정성을 다하여
疏　地靈 신령스러운 땅을 소통하고
面陽正位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네.
無念爾祖 선조(先祖)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椀豆　　 사발과 접시, 대접과 술잔에
薦而潔精 정갈한 음식 올리니
有道曾孫 도(道)가 있는 증손(曾孫)들
戶庭瓦　 호정(戶庭)과 기와와 벽돌을
守而審愼 잘 지켜 조심하게 하소서.
上之三十九年壬寅十二月十五日八世孫顯陵參奉映奎　手謹撰
금상(今上)15) 39년(1902) 임인 12월 15일에 8세손 현릉 참봉(顯陵參奉) 영규(映奎)는 손을 씻고 삼가 짓다.

15) 금상(今上) : 지금의 임금님이란 뜻으로 고종(高宗)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