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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郁敏(욱민)이며,호는 若菴(약암)이시니 純祖 13년 癸酉年에 탄생하셨다. 23대 愼獨軒(신독헌) 鎭洪의 孫子이시다. 公이 탄생한지 8일 만에 어머님을 잃게 되니 이 일로써 한 평생 지극한 슬픔으로 여기시며 지내시다가 21세에 아버님을 잃게되니 여러 번 혼절했다가 소생하시었다. 비록 한 더위 일지라도 首侄(수질;상주가 머리에 쓰는 굴관의 테)과 腰帶(요대;상주가 입는 상복의 허리에 두르는 띠)를 벗지 아니하였다. 또한 考(고)와 妃(비)를 그리워하시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슬프다 나의 아버지께서 세상에 계신지 몇 해나 되셨던가 자식이 효도를 끝마치지 못하니 성심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 했습니다. 恩德을 갚으려고 하여도 갚을 곳이 없게 되었으니 홀로 쓸쓸한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슬프다 나의 어머님께서 나를 낳음에 크게 고생 하셨는데 바다 같은 깊은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면 잠깐 동안에는 이를 수가 없겠습니다. 감정을 가라앉혀 죄 지은 일을 생각한다면 죽지 않고서 아직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매양 부모님의 제삿날을 당할 때마다 슬퍼함이 初喪(초상)때와 같았으며 비록 제사를 지낸 후 남은 밥과 채소일지라도 차마 먹지 못 하였다.
祖父母님과 繼母님을 모시면서 그의 眞純한 효성을 다하여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어 명을 받아 시행하였으며 음식을 차릴 때에는 반드시 살펴보았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서 家廟(가묘)에 참배하고 그리고 다음에는 조부모님과 모부인님을 뵈었으며 그 뒤에는 傍系(방계)와 親族(친족)들의 집을 빠짐없이 찾아가서 안부를 물었다.
가난하여 고생하는 사람을 救恤(구휼)하되 항상 손이 미치지 못한 듯이 하였다. 항상 굵은 베옷을 입고 있었으나 안뜰(內庭)에 드나들 때도 일찍이 便服(편복; 평상시에 입는 옷)차림으로 드나들지를 아니 하였다.

일찍이 密陽府에 가서 놀 적에 그 산의 이름이 德大山이고 물의 이름은 覓德川(멱덕천) 이라고 한 것을 기뻐하고는 이내 詩를 지어 읊었는데 그 시는 看山多意思 臨水倍精神 (간산다의사 임수배정신;산을 구경하니 생각이 많이 떠올랐으며 물을 내려다보니 정신이 곱절이나 난다)라고 하였다.
素菴 金命圭는 梅山 洪直弼의 門人인데 연달아 끊임없이 서로 따르며 사귀었다. 이에 感慨(감개; 마음 속 깊이 느낌)하면서 말하기를 "사람은 스승과 벗이 아니 고서는 德(人格)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金公(김명규)의 주선으로 幣帛(폐백)을 가지고 鷺江(노강;홍직필의 거주지)의 門下에 가서 뵈옵고 학문을 연구하는 깊은 뜻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로부터 사물에 대한 견식이 점점 높아지고 마음의 수양이 더욱 정밀해졌다. 四戒와 六病에 대한 箴言(잠언;경계 하는 말)을 지어 상시 스스로 깨우치고 살폈으니 忍(인) 默(묵) 愼(신)  (외)는 사계이고 多言(다언) 好事(호사) 性急(성급) 自勝(자승) 務廣(무광) 自意(자의)는 육병이다.

誠(성)이란 한 글자는 만가지 虛僞(허위)를 소멸시키고 敬(경)이란 한 글자는 천가지 邪惡(사악)을 대적 할 수 있다. 사악과 허위는 어려운 것이 아니지 마는 誠(성)과 敬(경)은 매양 틀리기 쉬운 것이다.(一誠 消萬僞 一敬 敵千邪 邪僞 非難卜 誠敬每易差) 또 말하기를 "백년 동안 차라리 소경과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될지언정 하루라도 효도와 友愛와 충성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百年 一日忘孝悌忠)라고 하였으며 "신기하고 교묘한 것은 사람들이 다투어 사랑하고 있지만 청렴하고 고상한 것은 세상에서 간혹 廢棄하고 있다. 차라리 고상해서 폐기를 당할지언정 교묘해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新巧仁 爭愛 淸高 世或廢 寧高 受廢不可巧僞愛)라고 하였으며 또 "자신이 재능이 있어도 없는 듯 하며(有若無;유약무) 지식이 충실해도 空虛(공허)한 듯 하다(實若虛;실약허)"는 뜻을 따라서 그의 거실에 扁額(편액;글씨를 써서 방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은 널조각)하기를 若菴(약암)이라고 했으니 이런 것들이 모두가 평상시 공부에 힘쓴 실상일 것이다.

하루는 어느 친구가 경치 좋은 산수에 가서 놀기를 요청하니 公은 얼굴에 슬퍼하는 氣色을 띄우며 말하기를 "내일은 나의 생일입니다 先妃(돌아가신 어머니)를 追念한다면 원한이 하늘 끝까지 사무치고 있는데 어찌 차마 잔치를 차리고 놀 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親族사이의 天倫은 이것은 곧 中庸에서 이른 바 道는 잠시라도 떠날 수가 없다.(道之不可소 臾離也;도지불가소 유이야)라는 것이다.
진실로 능히 근심과 재난이 있을 때 서로가 구휼해 주며 재물이 있고 없는 것을 서로가 도와 주기를 한 집안에 살고 있는 가족과 같이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百世(백세=百代)가 되도록 가문을 보전하는 도리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재물을 희사하여 契(계)를 만들기를 宋나라의 명재상인 范中淹(범중엄)이 만든 義庄(의장)의 전례와 같이 하고 이름을 同一契라고 했으니 글을 지어 서문을 썼다. 公은 타고난 용모는 크고 걸출했으며 성품과 도량은 훌륭하고 仁厚(인후)했는데 게다가 학문을 더욱 공부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일에 敦篤(돈독)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는 일에 서둘렀으므로 士友들로부터 推仰(추앙) 尊重(존중)되었다. 연세가 겨우 38세에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으니 아아 애석한 일 이로고 行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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