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초기 단종을 위하여 수절하신 생육신(조여,김시습,원 호,이맹전,성담수, 남효온)의 한 분이신 諱(휘) 旅(여)이시다. 자는 主翁(주옹), 호는 漁溪(어계). 고려 工曹典書(공조전서) 悅(열)의 손자이시며, 증司僕寺正(증사복시정) 安(안)의 아드님이다. 1420년(세종2년) 함안에서 출생하셔서 1453년(단종1년)에 성균관 진사 시험에 합격하셔서 국자감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셨으나, 1455년(단종3년)에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재임 불과 2년도 안된 앞날이 촉망된 젊은 Elite(엘리트)로서 불합리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섬길 수 없다는 정의감과 폐위된 단종에 대한 충성과 의리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혼연히 관직을 버리고 고향 함안 원북에 은거하심으로 그 의절이 단연 생육신중 으뜸이셨으며 이후 1456년(세조2년) 6월에 일어난 사육신등의 단종 복위 거사의 발원이 되셨다.

1456년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신 후 함안에서 200 km나 떨어진 영월에 수시로 문후 드리고 元昊(원호)의 觀瀾亭(관란정)에 유숙하시면서 어린 임금의 안전을 기원하셨고 때로는 치악산에 올라 울분을 토하시기도 하셨다. 지금도 치악산 암벽에는 원호, 李秀亨(이수형) 두 분과 어계 할아버지의 姓諱(성휘.성과 함자)가 나란히 새겨져 보는 사람마다 5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드높은 충절을 느끼게 한다. 1457년 금성대군이 거듭 단종 복위를 꾀하자 단종께서는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하시니 문상하러 가신 어계 할아버지께서는 영월 淸怜浦(청령포)에 이르러 배가 없어 통곡하시니 호랑이가 나타나서 어계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도강했다는 야사가 있어 영월군에서 청령포로 가는 흰재에 그
유적비를 건립 보존하고 있다.

계 할아버지께서는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왕의 얼을 東鶴寺(동학사)에 모신 후 함안으로 돌아와 서산아래에 기거 하셨는데 이 서산을 후세사람들은 伯夷山(백이산)이라 불렀다. 단종 승하 후 3년 동안 상복을 입어 신하의 도리를 다 하실 뿐 아니라 1489년(성종20년) 70세에 서거하실 때까지 여생을 검소한 생활과 학문 추구에 매진 하셨다. 그 모습이 은나라 충신 백이 숙제에 비유되는 충절과 의리의 화신 이셨다. 단종을 사모하여 지은 詩(시) 九日登高(구일등고)는 백이의 서산채미가에 견줄만한 임금에 대한 충절이 구구 절절히 베어 있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셔서 自號(자호)를 漁溪(어계)라 하셨기에 우리 후손들은 어계 할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1698년 단종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 참판에 증직되시고 1703년 경상도 유생 郭抑齡(곽억령)등이 成三問(성삼문),朴彭年(박팽년)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 바, 1706년에 평소 기거하시던 백이산 밑 원북동에 祠宇(사우)를 세워 金時習(김시습),李孟專(이맹전),元昊(원호),南孝溫(남효온),成聃壽(성담수)와 함께 제향 하니 이곳이 西山書院(서산서원)이다. 어계 할아버지의 후손인 우리의 고향에서 생육신 6분의 제향을 올리게 됨은 어계 할아버지의 충절이 그 으뜸임을 우리 후손들은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1781년(정조5년)에 이조판서겸 同知義禁府事五偉都摠府副摠管(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加贈(가증)이 있었고 謚號(익호)를 貞節(정절)이라 내렸다. 1868년 고종 때 국령에 의해 전국의 서원이 헐리게 됨에 따라 1980년 정부 보조와 후손과 士林(사림)의 성금으로 옛 院趾(원지)에 서원을 복원하였으며 서원 동쪽 담 장 밖 에 연못과 암석의 경관이 좋아 采薇亭(채미정)을 지어 할아버지께서 임금을 사모하며 지으신 구일등고시의 뜻을 백이의 채미가와 맥을 같이 함을 기리고 있다.

1742년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趙營석에의해 漁溪集(어계집)이 집필되어 내려오고 있다(조영석은 1781년 이조참판에 추증).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에 있는 할아버지 생가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159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齋室(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우진각 기와집으로 蓋瓦(개와)에는 戊午(무오) 九月日(9월일)이라 銘文(명문)되어 있고, 주변은 토담을 둘렀다. 이집 바로 뒤에는 漁溪(어계)할아버지와 貞夫人(정부인)에게 享禮(향례)를 올리는 祖廟(조묘)가 있고, 이곳에 下賜品(하사품)인 銅製(동제) 香爐(향로)와 할아버지께서 짚던 竹杖(죽장)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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