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공(창자 규자 강로할아버지) 증조부님 영정
번호 63 작성일 2009-10-08 오전 11:57:00
작성자 조흥래 전자우편 boram12305@hanmail.net  첨부 증조부사진.jpg(3638215)
부친함자 조은철 연락처 011-820-5407
1863년에 태어 나시고 1930년에 승하하신 증조부님의 사진입니다.

字(자)는 信五(신오), 號(호)는 東湖(동호) 만 길 높은 山岳(산악)같이 휘잡지 못 
할 氣象(기상), 천 갈래 물이 모여드는 江海(강해)처럼 크고 넓은 器量(기량), 名山
(명산) 大川(대천)의 精氣(정기)를 타고 風雲(풍운) 雷霆(뇌정)의 雄志(웅지)를 품
고 英遼(영료)함이 특별하게 드러나고 正義心(정의심)이 뭇 사람보다 특출하고 千古
(천고)에 뛰어나 世俗(세속) 스러움에 빠지지 않았으며 天下(천하)를 한 울타리로 하
여 내 몸 내 집안에 국한하지 않았으며 풍도와 범절이 융성하여 사람들이 의탁할 수 
있었고 익숙한 주선의 능력은 세상을 이끌어 다스릴 수 있으시었다. 

 봄바람 같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 仁愛(인애), 매섭고 차디찬 가을 서리 같은 그義
理(의리), 大河 長江(대하 장강)이 滔滔(도도)히 흐르듯 막히고 머뭇거림이 없는 그 
언변, 사리를 명확히 판단하는 그 지혜, 난관을 과감하게 극복하는 그 용기, 이 모두
가 타고 난 천성 그대로 이시다. 어려서부터 기상이 늠름하여 운오공의 英風(영풍)
을 닮아 운오공께서 큰 뜻을 세상에 펴지 못했음을 평생 한스럽게 생각하여 때로는 
激昻(격앙)하여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시었다. 
 

 동호공은 총명함이 과인 하시어 諸子 百家書(제자 백가서)를 눈에 한 번 거치기만 
하면 다 기억하여 잊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특히 醫書(의서)에 造詣(조예)가 대단
히 깊어 많은 의서와 약재를 구비해 두고 병을 앓는 사람들을 모두 무료로 치료해 주
었으며 이 밖에 經書(경서)를 위주로 하여 佛書(불서), 老莊書(노장서) ,風水 地理書
(풍수 지리서) ,卜書(복서) ,列聖御製(열성어제) ,徵琵錄(징비록) ,星湖塞說(성호새
설) ,山林經濟(산림경제) 牧民心書(목민심서) 신구 소설로서는 三國志(삼국지) 西廂
記(서상기) 西遊記(서유기) 水湖志(수호지) 前燈新話(전등신화) 金鰲新話(금오신화)
血의淚(혈의누) 牡丹峰(모란봉) 등의 희귀본을 탐독 소장하셨고 더욱 소중한 것은 태
극기(대한 제국 시대 제조) 독립 선언문(三一 운동 당시 사용)들 이었다.(이상 모두 
六二五때 소실되어 정말 뼈아픈 일이다.) 

 동호공께서는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기셨으며 운오공께서 시대를 한탄 하셔서 
여러 날 술만 드시고 조석 진지를 전폐하시면 병환이나 나실까 하여 울면서 지성으
로 진지 잡수시기를 애원하시었다. 선대 일에 성의가 지극하여 念脩齎室(염수재실) 
역사를 계획,완공하였으며 주위에 화초 과목을 손수 심으신 것들 중에 은행나무 만
이 남아 지금도 손댄 흔적[手澤(수택)]이 남아 있는 듯 하며 산판까지 들여놓아 앞으
로의 재실에 소요되는 목재와 땔나무까지에도 마음을 쓰시었다. 戊申(무신) 世譜(세
보)를 운오공의 유지를 받들어 편성하였고 伯侍(백시) 임파공을 따라 雲谷書堂(운곡
서당), 古今亭(고금정)을 운오공의 유지를 받들어 세웠으며 戊辰(무진)년 겨울에 종
가 사랑채가 화재로 소실되자 그 이듬해 봄에 백시 임파공과 숙의하여 다시 중건 하
셨다.
 

 동호공께서는 당대 명유 석학 李信庵(이신암) 準九(준구),金勿窩(김물와) 相頊(상
욱) 宋恒齊(송항제) 鎬坤(호곤), 裵定山(배정산) 文昶(문창), 權松山(권 송산) 載圭
(재규) 여러 분들 교분이 두터웠으며 西川(서천) 貞奎(정규), 一軒(일헌) 炳澤(병
택) 族內(족내 일가)와도 매우 친숙하게 지내시었다. 동호공께서는 일찍이 世道(세
도)를 개탄하여 마음이 음울하시면 봇짐 메고 막대 집고 산 따라 물 따라 명산 대천
을 두루 찾아 산꼭대기에서 또는 강기슭에서 소리 치며 껄껄 웃기도 하며 때로는 아
픈 마음을 퉁소에 붙여 원망도 하소도 하고 혹은 도시로 방황하시면서 울분을 터뜨리
기도 하셨다. 

 동호공 할아버지 태어나 채 삼도 가르기 전에 어느 스님 한 분이 대문 앞에 와
서 "이 댁에 아기 도련님이 출생하여 장래 큰 인물이 될 것이나 액운이 있어서" 하기
로 여비들이 그 말을 신번 할머니께 아뢰어 스님을 대문 안으로 인도하여 자세한 곡
절을 듣고 善後策(선후책)을 의논하였던 바 童子經(동자경)이란 책을 주면서 한 칠부
터 十세까지 생일에 일곱 번씩 읽어 주라고 해서 우리들 자손에 이르기까지 그 동자
경을 읽고 있다. 庚午(경오)년 十二(십이)월 十二(십이)일 達成(달성) 객관에서 하
세 하셨다. 時忌(시기)에 구애되어 예에 따라 치루지 못하고 그 달 二十一 일에 본
동 백일홍 산록 亥坐(해좌)에 치장하였다. 각처 각층에서 동호공 할아버지의 인품,기
개, 신망을 흠앙 또는 애석하게 생각하여 많은 만장과 제문이 백일홍 산을 덮었다.
(見言行錄 遺稿未刊, 묘; 본동 百日紅山麓 亥坐, 묘비;묘소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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