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란 한 종족의 혈연 관계를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기록한 계보(系譜)와 문벌 기록(門閥記錄)과 선조의 가장(家狀), 행적(行蹟), 묘비명(墓碑銘) 등을 모아 정리하여 꾸민, 이를테면 씨족의 역사책이다.

한 나라에는 그 나라 국민들이 전개한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을 기록한 국사(國 史)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씨족 집단에서는 그 씨족의 구성원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활동한 자취를 기록한 족보가 있는 것이다. 각 씨족의 구성원들이 합친 것을 국민이라 한다면, 그들의 활동 기록인 족보를 합한 것이 국사의 한 부분이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들 족보는 동양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인즉 구미 각국에도 문화민족에게는 족보가 있다. 다만 그 규모의 방대함이나 내용의 정밀함에서는 구미의 족보는 우리 나라의 족보와는 비교도 안되는 어설픈 것이다. 즉 우리 나라의 족보는 동성동본에 속하는 동족의 전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구미의 족보는 왕실계통이나 일부 귀족의 것을 빼 놓고는 대개 자기집안의 가계를 간략하게 기록한 가첩(家牒)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고려 중엽 이후로서 김관의(金寬毅)의 왕대실록(王代實錄), 임경숙(任景肅)의 선원록(璿源錄)이 그 효시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왕실의 친척인 종자(宗子; 종가의 아들)와 종녀(宗女)까지 기재하는 등 족보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추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족간에 족보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었으나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부자 관계가 밝혀져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나온 각 씨족들이 족보를 만드는 근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책을 관청에서 보관하여 관리를 선발하였다. 또 결혼하는 데에도 이용 하였다. 즉 문벌이 낮거나 귀족이 아닌 종족은 과거를 보거나 관리로 꼽히는 데에 많은 차별을 받게 되었으며, 문벌에 차이가 있는 가문과는 혼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록문서는 종부시(宗簿寺)라는 관청에서 관리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상신록(相臣錄), 공신록(功臣錄) 등이 정비되어 그들의 시조나 부자관계를 일부분이나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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